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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兩非論)과 전두환

2021-11-24(수) 20:08
사진=한국의 Dictator 2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일제나 중국제나”, 한 친구가 일본 불매운동에 아랑곳없이 일본차를 타는 동창을 타박하자, 중국제 클러치 백을 들고 있던 이에게 한 볼멘소리로, 일본의 소·부·장 수출규제로 인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지 3년째가 돼 가는데도 그의 친일적 성향이 여전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울리는 사람들이 늘 똑 같다보니 세월이 흘러도 친일(?)의 ‘피’는, 중국까지 등장시켜 자신에게 향하는 지적을 물 타기 하려는데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日本軍 출신으로 만주군관학교에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충성을 다하겠다며 혈서로 견마지로를 실제로 써서 보냈으며, 일제치하 만주에서 독립군 때려잡았던 자를, 오히려 경제발전의 공이 있다며 칭송하고, 각하가 계셨다면, 계셨다면 하면서 그 딸의 조실부모를 안타까워하며 ‘각하’로만 기억하는 者이니, 아마도 그의 직계나 방계가 친일인물이거나, 종교적으로 ‘각하’의 ‘은혜’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者였다.

그런 그에게, 각하의 딸이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불리던 ‘무당’과 그 딸에 휘둘리며, 돈도 다 털어먹고 촛불로 탄핵 당했지 않았느냐는 말엔, ‘촛불’은 다 ‘좌빨’이라며 핏대를 세우더니, 급기야 ‘조국’과 대통령을 들먹이며, 좌빨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양비론을 펼치자, 그 판은 끝나게 된다.

양비론(兩非論),
젊은 층의 신조어로 ‘모두 까기’라고 부르는 양비론은, 서로 상충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놈도 싫고, 저놈도 싫다'라던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라는 식으로, 주장이 대립되는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다.

양비론 생산의 가장 큰 ‘공’은 역시 ‘언론’으로, 학문적 발전을 위한 논쟁은 없이, 사회적 이슈 특히,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두 주장을 양쪽 모두가 다 잘못되었다고, 싸잡아 비판하는 척하지만 결국은 권력의 주구로 길들여졌을 뿐이다.

(윤석열 "전두환 조문, 전직 대통령이니 가야 하지 않겠나“
‘5·18 사과 안했다’ 질의에 “상중이라 적절치 않다”
2021.11.23. 경향신문)

(이재명 "내란 학살 주범…조문 생각 없어"
"全, 마지막까지 국민께 반성·사과 안해"
2021-11-23 뉴스1)

놀랍게도 전두환의 죽음에서도 양비론이 등장한다.

(이재명 "학살 전두환 조문 안해" vs 윤석열 "조문 가야지"
李 "대통령 예우 박탈됐으니 '씨' 호칭이 맞아"
李 "마지막까지도 국민에게 반성, 사과 안 해"
尹 "삼가 조의…유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
尹 "전직 대통령이시니까…가야되지 않겠나"
2021.11.23. 뉴시스)


(끝내 사과하지 않은 학살자, 전두환 사망/
전두환이 사과했다는 민정기의 거짓말
[전두환 사망] 1988년 11월 23일 대국민 사과문 살펴보니
21.11.24 오마이뉴스)


전두환은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직후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시위를 벌이면서 그의 눈에 들게 되었고, 박정희의 비호아래 군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니, 전두환에게 있어 박정희는 주군이자 은인임에도, 10·26 직후 그의 집무실 금고를 털었으며, 최태민과의 관계를 이미 파악했던 전두환은 박근혜에게는 금고속의 내용물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박살낸 이유도, 하나회는 박정희가 전두환을 위해 만든 불법 조직으로, 전두환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부를 장악했으며, 두고두고 군 출신으로 정권을 장악해, 자신의 의도대로 국정을 농단하기 위한 쿠데타 의도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박정희나 전두환 둘 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출신 독재자란 공통점이 있지만, 둘의 평가가 극명한 것은, 박정희는 당시 농경국가인 대한민국에 고속도로와 철도 등 국가 인프라 구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자들이 보수는 물론이고 일부 진보진영의 인사들도 있지만,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80년대 호경기가 그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측근들은 있으나, 당시의 호황은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이른바 ‘3저 현상’에 의한 것이지, 전두환의 업적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국제그룹 등 기업협박과 해체에 앞장섰으며, 퇴임 시 통치자금이라는 어이없는 명목으로 비자금 1,000억을 챙겼고, 기업들을 협박해 5,000억을 뜯어냈으며,

당시 이에 대해 전두환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되레 불안을 느꼈다.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라는
희대의 x소리를 1996년 2월 26일 ’전두환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했었다.

전두환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5·18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려 수백명의 시민들을 학살하고, 수천명의 시민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등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으며, 체육관 선거를 실시해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한 살인마 독재자일 뿐으로, 당시 그에게 항거하던 수많은 이들은 그의 악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전두환이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는, 그는 반성 없는 살인마 독재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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